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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조선시대

조선의 9대왕 -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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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성종(1457년~1495년, 재위기간 1470년~1495년)은 조선의 9대 왕으로서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의 차남으로 태어났고, 연산군과 중종의 아버지이며 인종과 명종의 할아버지이다. 성종은 조선시대 왕중 세종과 더불어 성군으로 불리었다.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는 성종이 태어나자마자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조선의 8대왕 예종이 즉위 1년 만에 갑작스럽게 승하하게 되면서 성종은 왕위 계승 서열이 세 번째였으나 장인 한명회와, 왕실 최고의 어른인 할머니 정희왕후의 지원으로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아직 친정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할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즉위 후 7년이 흐르고 성인이 되자 수렴청정을 거두고 직접 친정을 개시하였다. 

 

성종 때에는 나라 큰 문제 없이, 태평성대가 지속되었고,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다. 세종대왕의 치적을 계승하여 조선을 발전시키는데 주력하였다.  안타깝게도 왕으로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  원인이 되어 39세의 젊은 나이 승하하였다. 

 

성종은 풍류를 즐기고 예술적인 기질이 다분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학문을 좋아했고 독서를 즐겨하며 특히 시를 매우 좋아했다. 

 

왕위에 오르기까지

성종은 아버지 의경세자가 요절한 뒤 어머니와 함께 궁을 나가 사가에서 생활했고 봉호는 자산군이었다. 성종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1467년(세조 13년) 당시 영의정이었던 한명회의 딸 한 씨와 결혼하였다. 이는 훗날 한명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왕위에 오르는 시작점이 되었다. 사실 한명회 딸과의 결혼은 성종의 어머니가 왕위를 노리고 의도했다기보다는 당시 왕족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당시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이었던 한명회의 보호를 받기 위함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1469년 성종의 삼촌 예종이 20살의 나이에 승하하게 되자, 당시 황실의 최고 어른 대왕대비였던 정희왕후와 신숙주, 한명회등과 후계를 논의하였는데 예종의 아들이자 가장 정당한 왕위 계승권자였던 제안대군은 아직 4살이라 너무 어리고, 성종의 형이었던 월산군은 몸이 너무 허약하다는 이유로 자을 산군을 새 국왕으로 지목하게 된다. 예종이 아침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에 사망을 하고 자을산군은 당일 오후 네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즉위식을 하게 되었다. 이는 왕위 계승 첫 번째가 아님에도 왕위에 오르게 되는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잡음을 경계하여 서둘러 처리하였다는 의견도 있다.

1469년 13살의 어린 나이에 군주 수업도 전혀 받지 못한 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즉위 이후의 생애와 업적

성종은 즉위 후 대왕대비였던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있었고, 7년 후 성인이 돼서야 직접 친정을 개시할 수 있었다. 세조가 편찬을 시작했던 '경국대전'을 완성해 반포했고, 하위법인 '대전속록'을 편찬하였다.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악학궤범' 같은 서적을 편찬해 조선의 역사와 문학 그리고 지리와 음악에 대한 자료들을 집대성하였다. 성종은 세종대왕의 치적을 계승하려 하였고 문화면에서도 세종대왕 때의 정책과 비슷하였다. 

 

외교면에서는 북방의 여진족을 소탕하였고 명나라와의 사무역을 대폭 확대, 일본과도 무역 확대 하여 중계 무역을 활발하게 만들어 국력을 크게 키워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리고 성종의 인품과 명성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수렴청정 시기 때는 공신들 주축으로 구성된 원상제로 인해 왕권이 약해졌다. 이때 대신의 세력이 세오 이래로 최고점을 찍게 된다. 성종이 친정을 시작하면서 원상제를 혁파하고 대신을 견제하려 대간을 적극 활용하였다. 다만 이런 대간의 활용은 대간들의 영향력이 커지며 새로운 폐단이 나타나게 된다. 영의정마저도 대간이 무서워 국정 운영에 대해 발언하기를 꺼려하였고 대간들은 왕에게도 무례한 발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성종은 대간들이 심한 비난을 해도 그들을 배척하기보다는 웬만하면 존중해 주었다. 유교를 중시하였고 본인 성품도 온순하고 어질며 착하기도 하였으나 왕위를 이어가는데 정통성이 약하다 보니 왕권이 약한 이유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성종은 38세가 되던 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실록에 의하면 결핵과 천식에 결려 낫지 않고 두통까지 있어 고생하던 차에 갑자기 종기까지 생겨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고 한다. 승하 직전 성종은 본인 운명을 직감하고 창덕궁에 신하들과 연산군을 부른 후 연산군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였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 성종은 학문과 정치에 몰두하며 늘 과로를 하였으며, 운동과 같은 건강관리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종의 능은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선릉이다. 지하철 2호선의 선릉역은 이 능에서 역명을 따왔다. 선릉 옆에 있는 중종의 '정릉'과 묶어서 '선정릉'이라고 부른다. 이 또한 지하철 9호선의 선정릉역의 유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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